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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러시아정교회를 만나다. 우스펜스키 성당 우리에게 핀란드는 노키아의 나라, 이케아의 나라, 무민의 나라다. 복지국가의 사례이자, 선진 교육의 표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1155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1917년 러시아 통치를 벗어날 때까지 무려 700여 년의 식민지배의 역사가 있는 나라다. 그렇기에 핀란드에는 지배국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러시아정교회의 성당인 Uspenski Cathedral도 그중 하나. 의도하지 않았으나 첫 방문지가 러시아 지배 시절의 흔적이라니, 왠지 명치끝이 묵직하다. Uspenski Cathedral은 그 생김의 독특함과 언덕 위에 위치한 덕분에 한눈에 찾을 수 있다. 트램에서 내려 몸을 돌리자마자, 처연한 터키 옥색의 지붕과 핏빛을 닮은 검붉은 벽돌의 대비가 시선을 잡아챈다. 홀린 듯 언덕을 ..
[매일글쓰기] 아주 먼 눈이 흐릿하다. 며칠째 밤잠을 설친 탓이리라. 항상의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번 몸이 알아챈다. 아직도 아주 먼 길을 가야 한다며... 부산한 마음은 밤잠을 흔들며 재촉하는데, 다리는 자꾸 같은 곳을 맴돈다. 그저 시간이 밀어대는 방향으로 죽음에 다가서는 대신, 나의 있었음을 알리고 싶어, 내 눈길은 내 마음은 아주 먼 곳을 향하는데, 따르지 못하는 육체의 무게와 늙음이 못내 슬프다.
[매일글쓰기] 찾아오다 내 매일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지난한 발걸음에 여린 연둣빛 잎이 걸립니다. 연둣빛 잎 하나에, 어깨에 걸친 두터운 코트가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내 혼자 느리게 시절을 걷고 있던 건가. 시절을 이제야 알아챈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연둣빛 잎 하나가 스위치를 켠 것뿐인데, 눈 앞이 환해집니다. 연둣빛 잎 하나가 시절의 속도를 바꿨을 뿐인데, 내 살갗을 저릿하게 하던 찬 기운이 순간 따스해집니다. 잊지 않고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온 연둣빛 잎이 고마워집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찾아오다’만으로 따스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느 날엔가는, 정말 그 먼 어느 날엔가는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매일글쓰기] 파괴 지혜로운 수컷. 그의 이름이다. 소리는 힘이 있어, 무엇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형성된다고 했던가.. 이름에 수컷 웅을 가진 그는 날 것의 남자다. 그의 사랑도 날 것의 남자를 닮았다. 몰아치듯 뜨겁고, 때론 미친 듯 차갑고, 또 때론 자기 영역에 침잠한다. 그리고 그 주기에 따라 나의 삶도 요동친다. 극한의 행복으로 치닫기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오랜 세월 지속된 평정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난 낯선 혼돈에 통제력을 잃고 자기 파괴를 시작한다. 피아식별을 잃고 자가포식을 시작한 면역계처럼, 나를 지키는 것이 또한 나를 파괴하는 양면을 가진 자기 파괴를 시작한다.
[매일글쓰기] 물끄러미 지친 마음이 몸을 끌어당긴다. 날은 봄을 내달리고 있는데, 어이 나는 지치는지... 멍한 눈길을 돌려, 창밖, 푸릇함이 올라온 공원을 바라본다. 아무런 예고 없이 다가온 푸름에 안달 난 겨울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먼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줘.’ 창백한 그 손길이 나를 너무 닮아서, 너를 향해 초췌한 갈망을 품는 나의 사랑을 너무 닮아서 눈길은 푸름을 향해 두곤, 발걸음은 겨울의 여행을 따라나선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맑은 웃음을 웃는 너를 갈망하며...
[매일글쓰기] 포장 한 꺼풀 벗긴다. 다시 또 한 꺼풀. 얼마나 벗겨내야 내 민낯을 볼 수 있을까? 다른 이의 이목이, 세상이 강제한 사회성이라는 포장. 그 두터운 포장이 이젠 내 살갗인 듯 익숙해 더 이상 진짜 나를 찾을 수 없다. ‘어디에 있니? 내 민낯아.’
[Day 1] 안녕, 이게 바로 핀란드식 사우나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스친 것은 '제대로 된 핀란드식 사우나를 할 수 있겠구나'란 기대감.가진 지식의 90%가 TV 프로그램에서 유래한 사람인지라, '사우나'하면 풍채 좋은 핀란드 아저씨가 수증기 열기에 빨갛게 익어버린 몸으로 눈밭을 구르거나, 살벌하게 얼어있는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비상식적으로만 보였던 열탕-냉탕의 크로스를 할 수 있다니, 어제 무섭도록 내린 눈이 오늘은 고맙기만 하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대감이 아직도 여독으로 지근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부산하게 가방을 챙겨서는 사우나가 위치한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드디어 도착한 사우나장.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다. 그래도 수줍은 동양인인지라 '혹시라도 누가 볼까'하는 마음에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는..
[매일글쓰기] 증거 어깨가 지근하다. 눈이 뿌옇다.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려본다. 진득하게 들러붙은 분비물이 눈썹 사이에 얽혀 눈이 떠지지 않는다. 자면서 흘린 눈물이 범벅이 되었나 보다. ‘그래, 어젯밤... 우린 헤어졌지.’ 의식에선 털어냈으나, 이별은 온몸에 증거를 새겨놓았다. 마치 영영 떼어낼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