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을 마치고는 받아든 키.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꽁 언 몸을 침대에 쏘옥 넣는다. 예상치 못한 4월의 폭설을 온전히 받아낸 여행자의 몸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이번에는 배가 문제다. 뭔가를 넣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따끈한 침대에서 팔을 살포시 꺼내서는 핸드폰을 잡아당겨서는 구글맵으로 수퍼마켓을 검색한다. 25분. 갈등이다. 커튼 틈으로 여전히 흩날리는 눈이 보인다. 침대냐, 식사냐...결국 배고픔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그 사이 온기를 머금은 옷을 몸에 끼워넣는다. 그리고 출발.
하지만 호텔 문을 나서자 마자 거센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눈이 뺨을 때린다. 그래도 배고픔이 무서운지라 다리를 부산히 움직이며 눈으로는 구글맵을 쫓는다. 그런데 이건 뭐지? 25분이 지났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15분이란다. 구글맵이란 것이 나의 휴먼팩터를 반영하지 않은 것인지, 장신인 핀란드인의 평균 걸음걸이를 반영한 것인지, 좀처럼 시간이 줄 지 않는다. 눈 쌓인 언덕을 몇 개나 고르고, 내려서야 수퍼마켓에 도착. 눈을 피해 실내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다음은 블랙 소시지(mustamakkara). 한눈에도 무섭도록 검은 녀석이 델리코너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모양새만 보면 청어를 뛰어넘는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그래도 여행은 항상 도전하는 것이기에 손가락을 쭉 뻗어서는 'This On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간절한 '아주 아주 조금만 달라는' 바디랭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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