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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따로 또 같이/유럽,핀란드(2017)

[Day 1] 안녕, 이게 바로 핀란드식 사우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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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스친 것은 '제대로 된 핀란드식 사우나를 할 수 있겠구나'란 기대감.

가진 지식의 90%가 TV 프로그램에서 유래한 사람인지라, '사우나'하면 풍채 좋은 핀란드 아저씨가 수증기 열기에 빨갛게 익어버린 몸으로 눈밭을 구르거나, 살벌하게 얼어있는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비상식적으로만 보였던 열탕-냉탕의 크로스를 할 수 있다니, 어제 무섭도록 내린 눈이 오늘은 고맙기만 하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대감이 아직도 여독으로 지근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부산하게 가방을 챙겨서는 사우나가 위치한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드디어 도착한 사우나장.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다. 그래도 수줍은 동양인인지라 '혹시라도 누가 볼까'하는 마음에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는 수영장이 발걸음을 잡는다. 절로 감탄이 나는 풍경. 하얗게 쌓인 눈 저편에, 모락모락 따스한 김을 품어내고 있는 모습. 상상했던 그대로의 사우나다. 수영장으로 난 커다란 유리문을 온 힘으로 밀어내니, 열린 공간이 머금고 있는 찬 공기가 폐며 피부를 찔러댄다. 기분 좋은 따끔거림. 이번엔 용기를 내어 다리 한쪽을 쑥 들이밀어 본다. 하지만 소복한 눈 위로 뻗은 발가락은 영 펴지질 않는다. 4월, 봄. 봄에 익숙한 몸에는 차가운 눈이 너무 낯설다. 낯선 눈에 닿고 싶으나, 낯설기에 선뜻 뻗지 못하는 그 발을 소심하게 눈 위에서 몇 번 저어 보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는 사우나실로 향한다.


사우나실 안은 물기를 가득 품은 나무향이 가득하다. 핀란드 사우나실의 복장 규정(?)을 모르는지라, 얼른 수영복을 갖춰 입고는 사우나실에 자리를 잡는다. '수건을 깔고 앉아야 하나? 아닌가? 괜히 어글리 아시안이라고 하면 어쩌지?'라고 한참을 고민하다가는 수건을 깐다. 그리고는 바가지에 물을 퍼서는 달궈진 돌 위에 붓는다. 순간 수증기가 올라와서 사우나실 안이 따뜻해진다. 몸이 어느 정도 따뜻해지니, 눈 쌓인 수영장에 나갈 용기가 난다. 수건을 두르고는 종종걸음으로 수영장에 가서는 얼른 물속에 몸을 담근다. 유리 너머로 막 얼굴을 내민 태양이 보이고, 적당히 열기가 오른 몸과 따끈한 수영장 물까지... 천국이 따로 없다. 한참을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고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사우나실로 향한다. 그렇게 사우나-수영장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니, 여독에 무거웠던 몸이 가뿐하다.

이것이 바로 원조 사우나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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