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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따로 또 같이/유럽,발칸반도(2015)

(발칸#16) 전쟁의 상흔에서 화합으로, 보스니아 모스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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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몸을 태운 버스는 메주고리예(Međugorje,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떠나 모스타르로 향합니다.

 

모스타르로 가는 길은 험준한 산을 구불구불 내려갑니다.

거대한 산세, 깊은 골짜기.

(이 지역이 디나릭 알프스여서에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길을 한참 달려갑니다.

 

모스타르는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자 자치제,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 주의 주도임

-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에 자리잡고 있음

- 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짐.

- 터키의 통치 동안,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됨
- 다리는
1993년 11월 9일 10시 15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다시 복구가 된 상태임.

 

(출처 : 위키피디아)

 

 

발칸 여행 중, 가이드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은 유고공화국의 티토입니다.

티토는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출생에 대한 배경을 유고공화국의 민족융합정책으로 녹여냈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민족이 섞여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꿈꿨고, 통치의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유고연방의 나라들은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티토의 사후, 서로 헤게모니를 잡고자 하는 민족간의 반목이 일어났고,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서 1992년 4월에서 1995년 12월까지 지속된 전쟁이 바로 보스니아 내전입니다. 

보스니아 내전은

- 티토가 사망한 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자 세르비아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지원 아래 보스니아 전쟁을 일으킴

- 내전 1년 전인 1991년, 보스니아에는 무슬림인 보스니아인 (44%), 세르비아 정교회 세르비아인 (31%), 천주교 크로아티아인 (17%)이 살고 있었음

- 무차별적인 도시 폭격, 인종 청소, 집단 강간대학살 등으로 대표되는 내전 이후, 10만-11만명이 사망하고 220만명이 난민이 되었음

 

(출처 : 위키피디아)

이렇게 처절한 내전을 겪어낸 지역이 바로 모스타르입니다.

앙상하게 서 있는 건물 외벽이 그 시절의 아픔을 소리없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스타르 다리는 이슬람 지역과 카톨릭 지역을 이어주는 다리로 1993년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 파괴된 다리의 파편들을 강에서 건져올려 복원을 하여,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주차장에서 내려 다리를 향하는 길은 이슬람 지역으로, 상가에서 나자르 본주같은 이슬람 특유의 기념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슬람 회당도 위치하고 있고요.


모스타르 다리는 다리 위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레트바 강에 발을 담그고 올려다 보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특히 Photo Zone은 다리 아래라고..(가이드 언니 출처)


일단 Photo Zone인 다리 아래로 이동을 합니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여기저기 그늘에서 몸을 누이고 책을 읽으며 쉬는 모습이 부럽네요.

이것이 여행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달까~​

  

드디어 도착한 강.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흰 구름, 이슬람 마을과 기독교 마을 사이에 놓인 아치형의 다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까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다리의 모습은 참으로 당당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다리 아래를 도도하게 흐르는 강.

많은 사람들이 그 강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막 물에 뛰어들려는 검은 피부의 아이도,​

 

강가의 바위에 앉아 세월을 낚는 연인도,

한 켠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놀라워하는 아이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곳을 즐기고 있습니다.

위쪽 마을에 있던 내전의 상흔은 이곳에서는 잠시 잊게 됩니다.

밝은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강에 발을 담급니다.

이 강은 물살이 빠를 뿐 아니라, 수온도 엄청 낮습니다.

발을 담췄을 뿐인데, 머리 끝까지 찬 기운이 뻗어올라오면서 몸의 땀을 모두 식게 합니다.​ 


저 다리 위의 저 남자분은 뛰어들려는걸까요?

예로부터 모스타르의 남자들은 청혼을 할 때, 저 다리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물이 엄청 차서, 아무리 더운 날에도 바로 뛰어들면 심장마비에 걸리는 경우가 많대요.

그래서 다이빙 전에는 꼭 강의 물을 몇 박가지 몸에 뿌린데요.(가이드 언니)

어쨋건 사랑을 위해서, 몸을 던진다는 것은 멋지긴 하네요.​

이슬람 마을 쪽,

 

그리고 기독교 마을 쪽을 한번씩 바라보고는 다시 마을 위쪽으로 이동합니다.

 

마을 올라가는 길에는 시원한 강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는 까페들이 있어요. 

 

이슬람권답게 물담배도 즐길 수 있답니다. 단돈 5 유로~~로요.

 

 

저는 벽을 뚫고 나온 나무의 뿌리를 멋들어지게 그려준 위트가 있는 집을 선택했어요.​

터키식 차와 커피도 파는 집인데..


저의 선택은...

 

저와 아빠를 위해서는 맥주, 엄마를 위해선 레몬네이드를 선택.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맥주까지 마시고는 모스타르를 떠납니다.

여기까지는 맘이 참 좋았는데, 길에 있는 공동묘지에 즐비한 비석을 보고 다시 맘이 착잡해지네요.

전쟁은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특히 서로 벽을 대고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요.

우리에게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기에, 보스니아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이 보다 깊숙이 맘에 와 닿는 것이겠지요.

다시는 누구에게도 이런 슬픔이 없기를...

# date : 2015.7.15​

 

#별책부록 #1 :

보스니아 출신의 이보 안드리치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마을 사이에 놓인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드리나 강의 다리'입니다.

터키 제국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한 정책을 보여주었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산골마을의 사람들은 많이 이슬람 개종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발칸반도에 이슬람 신자가 많은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드리나 강의 다리'는 터키 제국 시절..

세금을 내지 못해 어린 아들을 술탄의 근위병으로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한 집안.

그 아들이 술탄의 장군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고향에 놓아준 화합의 다리인 '드리나 강의 다리'

그 다리를 둘러싸고  터키 제국 시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400여 년 동안 일어난 문화의 공존과 충돌, 사랑과 반목의 역사를 그린 소설이래요.

드리나강의 다리(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3201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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