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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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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글쓰기] 찾아오다 내 매일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지난한 발걸음에 여린 연둣빛 잎이 걸립니다. 연둣빛 잎 하나에, 어깨에 걸친 두터운 코트가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내 혼자 느리게 시절을 걷고 있던 건가. 시절을 이제야 알아챈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연둣빛 잎 하나가 스위치를 켠 것뿐인데, 눈 앞이 환해집니다. 연둣빛 잎 하나가 시절의 속도를 바꿨을 뿐인데, 내 살갗을 저릿하게 하던 찬 기운이 순간 따스해집니다. 잊지 않고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온 연둣빛 잎이 고마워집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찾아오다’만으로 따스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느 날엔가는, 정말 그 먼 어느 날엔가는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매일글쓰기] 파괴 지혜로운 수컷. 그의 이름이다. 소리는 힘이 있어, 무엇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형성된다고 했던가.. 이름에 수컷 웅을 가진 그는 날 것의 남자다. 그의 사랑도 날 것의 남자를 닮았다. 몰아치듯 뜨겁고, 때론 미친 듯 차갑고, 또 때론 자기 영역에 침잠한다. 그리고 그 주기에 따라 나의 삶도 요동친다. 극한의 행복으로 치닫기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오랜 세월 지속된 평정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난 낯선 혼돈에 통제력을 잃고 자기 파괴를 시작한다. 피아식별을 잃고 자가포식을 시작한 면역계처럼, 나를 지키는 것이 또한 나를 파괴하는 양면을 가진 자기 파괴를 시작한다.
[매일글쓰기] 물끄러미 지친 마음이 몸을 끌어당긴다. 날은 봄을 내달리고 있는데, 어이 나는 지치는지... 멍한 눈길을 돌려, 창밖, 푸릇함이 올라온 공원을 바라본다. 아무런 예고 없이 다가온 푸름에 안달 난 겨울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먼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줘.’ 창백한 그 손길이 나를 너무 닮아서, 너를 향해 초췌한 갈망을 품는 나의 사랑을 너무 닮아서 눈길은 푸름을 향해 두곤, 발걸음은 겨울의 여행을 따라나선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맑은 웃음을 웃는 너를 갈망하며...
[매일글쓰기] 포장 한 꺼풀 벗긴다. 다시 또 한 꺼풀. 얼마나 벗겨내야 내 민낯을 볼 수 있을까? 다른 이의 이목이, 세상이 강제한 사회성이라는 포장. 그 두터운 포장이 이젠 내 살갗인 듯 익숙해 더 이상 진짜 나를 찾을 수 없다. ‘어디에 있니? 내 민낯아.’
[매일글쓰기] 증거 어깨가 지근하다. 눈이 뿌옇다.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려본다. 진득하게 들러붙은 분비물이 눈썹 사이에 얽혀 눈이 떠지지 않는다. 자면서 흘린 눈물이 범벅이 되었나 보다. ‘그래, 어젯밤... 우린 헤어졌지.’ 의식에선 털어냈으나, 이별은 온몸에 증거를 새겨놓았다. 마치 영영 떼어낼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매일글쓰기] 감촉 오늘 하늘은 에이는 듯한 잿빛이다. 마치 모든 연을 끊어내듯 잔뜩 벼린 하늘이다. 팔을 뻗어 날 선 잿빛 하늘 속 미쳐 숨지 못한 게으른 달을 그려본다. ‘앗...’ 창백한 달을 따라 선홍빛 피가 흐른다. 벼려진 하늘이, 게으른 날이 만든 상처가 선명하다. 떠난 그가 남긴 차가운 말의 감촉처럼...
[매일글쓰기] 돌아보면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얼굴이 있다. 하지만 돌아본 그곳에 기대한 얼굴이 없다. 있겠다고 했는데, 있어주겠다고 했는데... 홀로 남겨진 공간을 알아챈 눈이 설움의 그림자로 그곳을 채운다.
[매일글쓰기] 어디에도 어디에나 있을 줄 알았다. 너의 맘이 내게 건너오고, 또 그만큼의 나의 맘이 건너갔을 때... 너는 내게, 나는 네게 어디에나 있는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버려진 약속처럼, 너는 어디에도 있지 않다. 눈을 감고 내딛는 모든 발걸음, 그 어디에나 너는 있지만, 눈을 뜨는 순간, 너는 그 어디에도 없다. 더 많이 가진 네가 특권을 행사하는 사이,더 적게 가진 나는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 어디에도 없는 존재를 오래도록 기다리는 숙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