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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기웃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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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삶의 여유 #1 나도 한 때는 개발자였다. 그 때는 내가 제일 바쁜 줄 알았었다. 새벽에 퇴근해서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집에 들어간다며 즐거웠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 때는 여유가 있었다.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 팀원들과 농담을 할 여유도...팀원의 집 안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로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여유도.. 그리고 노동의 버거움을 잊기 위해 장난을 칠 여유도 말이다. 삶의 여유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금은 6시 정각에 퇴근을 하지만, 사무실의 그 누구와도 이런 시시껄렁한 장난을 칠 여유가 없는 건 내가 훌쩍 나이가 먹어서만은 아니리라...
(제주) 한가로움을 마주하는 곳: 놀맨식당, GRI:M Cafe 여행을 가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 번잡함, 시간에 맞춰야 하는 강박, 정해진 일정, 주변인과의 관계맺기, 나에 대한 시선..그렇기에 여행에서 마주하는 '의외성'과 '한가로움'은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놀맨식당..'바람불면 쉬어요' 구불구불한 동네의 좁은 길을 어렵게 운전해서 찾아간 놀맨 식당. 그 식당 앞에 붙은 '바람이 많이 불어 쉼'...이라는 표지.서울에서는 화가 날만도 한 상황이지만, 귀엽게 눈썹까지 붙인 표지판을 보고는 입술로 '피식'하는 웃음이 나온다.그리고 갑자기 마음이 말랑해진다.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는 제주의 한가로움이 주는 여유..이렇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저 아래부터 올라오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GRI:M Cafe, 우연히 발견한 '..
[서울] 동진시장, 마카롱과 어스름내린 골목길의 정취 동진시장의 또 다른 매력은 어깨를 부딪힐 듯이 조붓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붓한 골목에 무심한 듯 놓여있는 평상이나, 턱 진 돌 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어스름이 내린 골목길. 번화한 골목처럼 북적거림은 없지만, 이 자체가 좋다. 어린 날 해진 후의 동네 골목처럼 작은 소리의 소근거림을 들으며, 골목에 놓인 평상에 앉아서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나오는 가게를 바라본다. 마침 가게 주인양반은 문에 몸을 기대고는 외국인 아저씨와 담소를 나눈다. 같이 앉은 친구와의 얘기도 그저 흘러가고, 시간도 같이 흐른다. 이 가게는 마카롱과 차를 주로 판다. 진열대 뒤로 보이는 정갈한 제과에 관련된 도구들의 간지가 이 가게의 내공을 말해주는 듯 하다. 마카롱은 손이 무척 많이 가는 디저트인지라, 그..
[서울] 동진시장 즐기기 동진시장.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연남동이라고 하면..."아하"하게 될 것이다. 요즘 가장 핫한 지역 중 하나이며, 서울의 숨겨진 골목 발굴의 최대 수혜지라고도 하겠다. ​ 연남동 중에서도 동진시장의 앞과 뒤 쪽에 바로 붙어 있는 가게들은 70년대 생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동네마다 있던 한약방, 이발소, 양장점..그리고 뿌연 간유리 창을 가진 가게들. 이제는 너무 옛날의 기억이라 내 머리 속에서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아내기 어렵지만, 눈 앞의 풍경에 갑자기 타임머신을 탄 듯이 나는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요즘처럼 세련된 한의원이 아니라, 음산한 비밀을 숨긴듯한 한약방의 느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건강해져서 돌아올 것 같은 한약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에 까페 리브레가 ..